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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여성들의 밟을 길

일제 강점기에 피어난 페미니즘과 리얼리즘

일제 강점기를 벗어나 근대화가 태동하던 시기. 훌륭한 여성 작가들이 현실 사회의 빈곤, 계급, 여성 문제를 주제로 앞 다투어 많은 작품을 내 놓았다. 그러나 찬찬히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있자면 다양한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안정된 경제력과 그들의 일탈(?)을 감싸줄 수 있는 든든한 집안, 해외유학과 고등교육 등 실제 그들의 삶과 작품에서 말하고자하는 주제의식 사이에서 왠지 괴리감이 느껴졌던 경험이 한번쯤은 있었을 것이다. 강경애는 그들과는 결이 다른 실제 빈곤의 삶, 당시 흔치 않았던 재혼 가정에서의 불화, 주류 문단에서 벗어난 변두리에서의 작품 활동, 그야말로 온몸으로 부딪히고 쓰러지고 일어나며 몸소 체험한 궁핍과 결핍의 경험을 그의 소설 「파금」, 「어머니와 딸」, 「소금」, 「채전」, 「지하촌」..
일제 강점기를 벗어나 근대화가 태동하던 시기.
훌륭한 여성 작가들이 현실 사회의 빈곤, 계급, 여성 문제를 주제로 앞 다투어 많은 작품을 내 놓았다. 그러나 찬찬히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있자면 다양한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안정된 경제력과 그들의 일탈(?)을 감싸줄 수 있는 든든한 집안, 해외유학과 고등교육 등 실제 그들의 삶과 작품에서 말하고자하는 주제의식 사이에서 왠지 괴리감이 느껴졌던 경험이 한번쯤은 있었을 것이다.
강경애는 그들과는 결이 다른 실제 빈곤의 삶, 당시 흔치 않았던 재혼 가정에서의 불화, 주류 문단에서 벗어난 변두리에서의 작품 활동, 그야말로 온몸으로 부딪히고 쓰러지고 일어나며 몸소 체험한 궁핍과 결핍의 경험을 그의 소설 「파금」, 「어머니와 딸」, 「소금」, 「채전」, 「지하촌」에서 풀어내었다.
특히나 그의 수필에서는 자신의 삶을 녹여내었기에 조금 더 날 것의 냄새, 학습되지 않은 진정한 리얼리즘이 느껴진다. 소위 말하는 인텔리의 교육받은 페미니즘이 아닌 실제 당시 중하층 여성의 삶을 경험하며 스스로 느끼고 깨우친 ‘여성의 나아갈 길’에 대해 이야기한다.
가난했기에 여성이었기에 식민지 백성이었기에 그 어떤 것도 자신의 노력으로 바꾸기 쉽지 않았을 그 시대의 모습을 강경애의 수필에서 만나보기를 바란다.
황해도 송화출신.
여성 소설가, 작가, 시인, 페미니스트 운동가, 노동운동가, 언론인.
필명 강가마.

어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어머니의 재혼으로 일곱 살에 장연(長淵)으로 이주하였다.
1921년 평양 숭의여학교에 입학했다가 두 해 뒤, 동맹 휴학과 관련하여 퇴학당한 후, 동덕여학교에서 1년 정도 수학했다. 1924년 문단에 데뷔하였으나 여성 작가에 대한 혹평과 외면을 당하기도 했다. 1927년에는 신간회, 근우회에 참여하였고, 근우회 장연군지부의 간부로 활동했다. 1931년 조선일보에 독자투고 형식으로 소설 '파금'을 연재하였고, 잡지 《혜성 (彗星)》에 장편소설 '어머니와 딸'을 발표하였다.

1932년에는 간도(間島)로 이주, 잡지 북향지의 동인이 되었다. 이후 1934년 동아일보에 연재한 장편 '인간문제'가 히트를 쳐서 명성을 얻기도 했다. 1939년부터는 조선일보의 간도지국장을 지내기도 했다. 시인이자 국문학자, 영문학자인 양주동의 한때 연인이었으며, 남편은 장하일(張河一)이다. 한편,김좌진의 암살 의혹을 받는 김봉환의 연인이란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1942년 건강 악화로 간도에서 귀국하여 요양하던 중 이듬해 1943년 생을 마감하였다.

창작 초기에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특징을 보이는 작품을 주고 발표하였으나, 1930년대 간도 생활 이후에는 한국 사회의 빈곤 문제를 작품화하는 데 힘썼다. 또한 여성과 계급 문제 등 사회적 약자를 대하는 현실 의식을 중요한 주제로 삼아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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